관계에 대한 사색

사실…대부분의 관계 자체는 아마도 기쁨이 더 많기는 하지만
최근…사람들과의 관계가 기쁨만 아니라 아픔도 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누군가와 깊이 친밀해지려면 꽤 오래 불을 지펴야 하는 나로서는
누군가와 쉽게 깊은 관계가 되는 것이 쉽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렇지 않기 때문에 쉽게 적정수준의 친밀함을 유지하게 된다.
그 특유의 성실함(이건 음…과연 장점인지 단점인지 스스로도 계속 논란 중이다 ㅡㅡa)으로 
나는 관계를 꾸준히 이끌어 간다. 적정수준의 꾸준한 관계
그런 관계를 통해서도 충분히 기쁨과 관계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점점 그것 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더 깊은 친밀감을 원한다. 
그런데 그때부터가 문제이다. 

그렇게 관계가 깊어지면 본성이 보여진다. 
상대의 본성, 말투, 여러가지 습관, 다양한 상황에 대한 나름대로의 행동방식, 일처리 방식들..
어떤 사람들은 감탄스럽고 존경스럽고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적정 관계를 맺고 있었을때의 좋은 장점들이 뭍혀 버릴 정도로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뭐…사실 그런건…이해해 줄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진의를 알 수 있기도 하니까..
그 진의를 알기 되기 까지 가장 참기 힘든건 어쩌면 친밀해진 서로를 대하는 태도들이다.
서로에게 조금 열려진 마음 때문이랄까? 
나를 아껴주는구나, 나를 좋아하는 구나, 그런 느낌이 아닌…관계를 경직되게 만드는 행동,
상황을 만들게 되고, 겪게 되면 그렇게 되면 참 슬프다.
이제 그 전으로 되 돌릴 수도 없어지니까…
그래서 예전에 갖지 못했던 ‘미움’ ‘경멸’ 뭐 그런 비슷한 감정들이 생겨난다.

어쩌면 더 시간이 지나고, 더 아파해보고, 더 상처주고 그래서 더 이해하게 되면,

지각인생 손석희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남보다 늦었고 사회진출도, 결혼도 
남들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정도 늦은 편이었다.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렇게 늦다 보니 내게는 조바심보다 
차라리 여유가 생긴 편인데, 그래서인지 시기에 맞지 않거나 
형편에 맞지 않는 일을 가끔 벌이기도 한다.
내가 벌인 일 중 가장 뒤늦고도 내 사정에 어울리지 않았던 일은 
나이 마흔을 훨씬 넘겨 남의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결정한 일일 것이다. 1997년 봄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가면서
나는 정식으로 학교를 다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어느 재단으로부터 연수비를 받고 가는 것도 아니었고,
직장생활 십수년 하면서 마련해 두었던 알량한 집 한채 전세 주고
그 돈으로 떠나는 막무가내식 자비 연수였다.
그 와중에 공부는 무슨 공부. 학교에 적은 걸어놓되
그저 몸 성히 잘 빈둥거리다 오는 것이 내 목표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졸지에 현지에서 토플 공부를 하고
나이 마흔 셋에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된 까닭은
뒤늦게 한 국제 민간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얻어낸 탓이 컸지만,
기왕에 늦은 인생, 지금에라도 한번 저질러 보자는 심보도 작용한 셈이었다. 미네소타 대학의 퀴퀴하고 어두컴컴한 연구실 구석에 처박혀
낮에는 식은 도시락 까먹고,
저녁에는 근처에서 사온 햄버거를 꾸역거리며 먹을 때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연배들을 생각하면서 다 늦게 무엇 하는 짓인가 하는 후회도 했다.
20대의 팔팔한 미국 아이들과 경쟁하기에는 나는 너무 연로(?)해 있었고 그 덕에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한두시까지 그 연구실에서 버틴 끝에 졸업이란 것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무모했다.
하지만 그때 내린 결정이 내게 남겨준 것은 있다.
그 잘난 석사 학위?
그것은 종이 한장으로 남았을 뿐, 그보다 더 큰 것은 따로 있다. 첫 학기 첫 시험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
연구실 구석으로 돌아와 억울함에 겨워 찔끔 흘렸던 눈물이 …

Arthur Ashe

서구 특히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테니스는 귀족 스포츠라고 해서 백인들의 전유물 이라고 한다.
근래에는 윌리엄스 자매같은 테니스 선수들도 있지만 정말 그 옛날 에는 흑인이 테니스를 하기 쉽지 않았다고 한다. 1960년대 당시 미국의 버지니아 주에서는 흑인은 테니스를 칠 수 없다고 법으로 정해 놓았을 정도로 흑인에 대해서 차별이 심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경비원의 아들로 태어난 아서 애쉬((Arthur Ashe, 1943~1993)는 메이저 테니스 대회에서 최초로 우승을 한 흑인 남성이 된다. 애쉬는 1968년 US오픈, 1970년 호주 오픈에서 우승했고, 1968년과 1975년엔 세계 랭킹 1위를 차지하여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가 된다.



대략 여기까지만 들어도 정말 어려운 시대에 얼마나 많은 수모를 딛고 일어서서 성공하게 되었을까 하는 존경심이 생기지만 그가 진짜 존경스러운 것은 흑인으로서 테니스 세계 랭킹 1위를 한 것 이상의 그가 갖고 있는 믿음과 신념이다.


우승 이후 더욱 유명해진 그는 1979년 심장질환으로 테니스 선수에서 은퇴 하게 되고 그 이후 테니스 코치, 방송해설자, 그리고 흑인들과 빈곤층 어린이를 위한 인권운동가, 자선사업가로 활발하게 일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는 1983년 심장수술 때 받은 수혈로 인해 에이즈에 감염 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그리고 서서히 죽어가면서도 집에 앉아 죽음을 생각 하기보단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활동하다가 죽는게 낫다면서 더 열심히 사회봉사를 했다고 한다.


어느 날 애쉬가 불치의 병 에이즈와 싸울 때 누군가가 그에게 위로 편지랍시고 편지를 썼다고 한다.
“애쉬, 당신은 하나님을 잘 믿는 신실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하필 당신에게 그렇게 무서운 질병을 주셨을까요? 그리고 왜 하필 에이즈란 말입니까? 하나님이 원망스럽지 않습니까? 도데체 왜 하필 당신이란 말입니까” 라는 내용의 편지 였다고 한다.


그 편지를 받은 애쉬는 이렇게 답장을 했다고 한다.

전세계에 5억 명의 어린이가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그 …

주홍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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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세기 3장6절

탕 탕….오랜만에 영화를 본 탓일까? 일찍 갔는데두 불구하고..긴장하지 않고 있다가 후배들과 떠들다가 시간을 딱맞게 들어갔다..컴컴한 극장안을 들어가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더듬더듬 내 좌석을 찾아 내려가는데 앞에 큼지막하게 성경귀절이 보였다. 그리고 하얀 그랜저XG의 트렁트 위로 총성이 두발 울린다.. 무슨 영화 일까? 궁금했다. 

이 영화를 찍기 직전 지난 초여름 변혁 감독(존칭은 생략 ^^;;)을 실제로 만났었다. 아주 우연찮게 만나게 되었지만 어째꺼나 나로선 상당히 괴로운 시기였는데도 불구하고 변혁 감독을 만나서 그것도 내 차로 아주 짧은 시간이나마 같이 드라이브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들떴었던 기억이 있다. 또한 변혁감독의 전작인 ‘인터뷰’를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또 한석규와 이은주란 배우를 좋아하기 때문에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 
두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모든 걸 다 가졌다고 생각했다…그때까지만 해도..” 기훈은 그런 남자였다.

경찰대학 출신이고 서에서도 능력을 꽤나 인정받고 어느 정도 지위도 있고 자신의 자식을 임신한 예쁜 아내도 가졌고, 좋은 집과 좋은 차, 그리고 불륜에 충실한 정부 가희도 있었다. 그에겐 다~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비밀을 알게되기 전까지만 해도… 

“수현이 사랑해?” 라고 묻는 가희의 물음에 ” 사랑해..수현이도 나 사랑하고..” 라고 당당히 답 할 줄 알고 오히려 “나 수현이한테 불만 있어 너 만나는거 아니다. 난 너 만나면서도 수현이하테 최선을 다했어” 라고 대꾸 할 줄 아는 남자가 기훈이란 남자였다. 동시에 두 사람에게 모두 충실하려고 했던 남자, 두 여자를 사랑하려고 했던 남자… 

그게 가능할가? 젠장 동시에 두 사람을 사랑하는게 가능한가? 만약 그럴 수있다면 단지 아주 짧은 시간일 뿐일 게다..결국 한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면…

살인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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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한다는 말… 
기쁜 일이건 슬픈 일이건 무언가를 추억 한다는건 야릇한 즐거움을 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난 가끔 우울할 때면 앨범을 꺼내들고 옛날 사진들을 들춰보며 학창시절과 여행에서 느꼈던 즐거움등을 추억한다. 또 가끔씩 “연중행사로 내방 대 정리”등을 하면서 옛날 일기들과 편지들을 꺼내보며 키득거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퇴행적이 되어버리기 직전에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추억에는 그런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추억 한다는 말을 좋아한다. 

그러나 때때로 상당히 기분이 우울해지는 추억들도 있다. 아주 불쾌한 일이 있었던 장소나 잊고 있었는데 떠오르게 만드는 그 어떤 것들이 나를 다시 그때를 추억하게 하면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이미 시공간 속으로 저 멀리 사라져버린 그러한 일들에 대한 추억이 아직도 나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아주 조금은 미치기 직전인 형사들을 이해가 된다고…조심스럽게 말해 본다.(사실 어찌 그 마음일 이해 하겠냐마는…ㅡㅡa) 술렁술렁 하는거 같지만 나름대로의 범인검거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박두만 형사, 날카롭게 증거와 탐문수사를 하던 서류 숭배자 서태윤, 날으는 워커발 조용구 형사… 그러나 살인범의 검거는 이제 그들에게 더 이상 ‘일’ 이 아니다. 아니 ‘일’ 이 될 수 없다. 직업으로서의 ‘일’ 은 적어도 무지하게 노력하면 어느 정도 해결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제 연쇄살인범을 잡는 일은 그들의 능력 밖의 일이 되어버린다. 그들의 뭉개진 자존감과 피해자가 늘어남에 따라 더욱 거세지는 분노로 인해 그들은 이 끝나지 않을 일을 위해 서서히 미쳐가는 것이다. 박두만의 혈기는 계속 되는 오판으로 소심해지고, 서태윤의 서류 또한 힘을 잃고 광기로 변해가고, 워커발을 자랑하던 조용기는 결국 다리를 잘리게 된다. 그러나 살인은 멈추지 않고 범인의 자취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다. 
영화 속에서 어이없게도 박두만 형사(?)는 점집을 찾아가서 경찰서 정문을 옮기라는 소리도 듣고, 먹…

마음만 먹으면 나도 뭐든 할 수 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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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마일을 볼 때 극장에 좀 늦게 들어갔다. 
이 영화를 볼 즈음 나는 바이오리듬의 3색 선이 모두 바닥을 치듯 삶에서 자신감을 쬐끔 상실했을 때였고, 아직 겨울의 차가움이 남아있는 2월의 겨울비가 감성을 자극해서 살짝 우울모드로 만들어놓은 데다가 원래 영화는 처음부터 봐야 하고 그리고 집중해서 봐야 된다고 주장하는(그래서 팝콘이나 음료수도 잘 안먹는 다는... ㅡㅡa) 나의 강력한 의지를 꺽어 버리는 상영시간 지각이 나의 이성을 상당히 번뇌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런 복잡한 마음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이다.  "만약에, 네가 단 한번..
단 한번의 행운으로
원했던 모든 걸 쟁취할 수 있게 된다면
그 기회를 잡겠어? 아니면 그냥 날려 버리겠어?" 당연히...“잡겠어! 놓치지 않겠어”..라고 말할 것 같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에게 주어졌던 기회들을... 나는 많이 놓쳤다. 때때로 잡은 적이 있었겠지만...수많은 기회들을 앞에 놓고 두려움에, 게으름에 또 수만가지 핑계로 외면해 왔던 것 같다. 영화 8마일은 이런 놓쳐 버릴 것 같은, 그래서 지금 잡지 않으면 후회 할 기회에 대한 영화이다.  8마일 이면 한 13km 정도가 된다. 
그 정도 거리면 우리집에서 동부간선을 타고 성수대교를 넘어서 압구정동에 도착 할 만한 거리에 약간 못미치는 거리이다. 그 거리는 생각보다 먼 거리이다. 하지만 막히지 않는다면 차를 타고 약 15분정도면 갈 수 있는 별로 멀지 않은 거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거리를 두고 강북에서도 한참 북동쪽 구석데기에 있는 월계동과 강남에서도 손에 꼽는 잘나가는 압구정동과의 엄청난 문화와 생각의 차이가 존재한다. 영화 8마일은 그런 거리감에 대한 영화인 것 같다.  또 8 마일은 꿈에 관한 영화이다. 
"친구..혹시 그거 알아? 꿈은 저 위에 있는데 현실은 밑바닥인거.."라고 말하는 레빗의 중얼거림처럼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이 그러할 것 같다...(나만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ㅜㅜ) 꿈은 저 위에 있는데..현…

미녀는 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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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날씨가 추워져서 만화책을 잘 안 빌려 봤지만 날씨가 따뜻할 때는 종종 만화책을 빌려 보곤 했다. 왜 따뜻할 때냐고??  그래야 어디 풀밭에 돗자리 깔아 놓고 엎드려서 만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원에서 만화책 보며 뒹굴거리는거 그거 생각보다 재미있다 ^^;; 아무튼 몇 달 전쯤에 본 만화인데 상당히 가볍고 재미있으면서도 많은걸 생각하게 하는 만화였다.  제목도 좀 그렇구 왠지 순정틱한 명랑 만화인 듯해서 게다가 그림도 약간 성의 없는 듯해서 주의깊게 보지 않았는데 첫권을 보고 나서 완결된 5편까지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만화의 기본에 충실하다. ^^  재미있다는 얘기다. 난 심오하고 심각한 진지한 그럴싸한 드라마 같은 만화를 즐기기도 하지만, 인간의 기본 본능을 자극하는, 웃기는 만화를 좋아한다. 나는 때때로 엄청난 미모의 여자를 보면 위압감을 느끼곤 하는데…(ㅡㅡ;) 아무튼 근데 바로 주인공인 칸나는 누가 봐도 쭉쭉방빵(^^;) 초절정 미인이다. 그러나 그녀는 성형 미인이다. 과거의 모습(정확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뚱뚱하고 못생겼을 것으로 추정되는)을 수백만 엔을 들여서 온통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다 고쳐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꽃미남에 친절하고 착하기까지 해서  모든 여자들에게 우상이 되고 있는 코스케를 차지하기 위해서 진정한 미녀로 거듭 나려고 한다. 하지만 미인에 대한 칸나의 ‘잘못된 오해’ 때문에 칸나의 진짜 미인되기는 계속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다. 아무튼 아무리 생각해도 유쾌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안타깝기도 하다 ^^;; 칸나는 미인은 절약도 하지 않고, 항상 도도 해야하고, 남들 앞에서 뽐내고, 레스토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에서 식사를 해야 하며, 싱싱한 생선을 고르려고 애쓰지도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미인의 모델이 바로 나나코인데 아이러니한 것은 나나코는 미인이라서가 아니라 원래 성격이 그런거였다. ㅡㅡa
아무튼 우리의 칸나…그녀가 어찌나 순진한지 ^^a  칸나의 그러한 미인되기는 정말 애틋할 정도로 안쓰러워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