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1999년 12월


<세기말>이라는 영화의 예고편을 보았을 때 그 비트있는 음악과 칙칙하고, 어둡고, 뭔가 두려운 느낌이 드는 그런 분위기를 보고 나는 뭔가 기대를 했었던 모양이다. 과연 송능한 감독이 세기말을 어떻게 보여줄것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데 막상 시사회장에는 제작자인 태흥영화사 사장님이 나와서 세기말에 세기말적인 영화 <세기말>을 시사하기 전에 너무나 안 세기말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고, 오히려 뭔가 한마디 멋지게 할 줄 알았던 감독은 그저 “잘 봐주세요” 뭐 그런 내용의 말 한마디 밖엔 안했던거 같다. 
영화 <세기말>엔 세기말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에 함부로 별을 달아주는 평론가들을 싫어하는, 그렇지만 돈을 위해 수준낮은 멜로물을 써나가는 시나리오 작가, 도덕 관념이라고는 전혀 없는, 오로지 돈 밖에 모르고, 자신밖에 모르며, 돈으로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졸부, 그 돈으로 놀고먹는 그의 아들,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 전임 교수가되기위해 돈을 기부해야만하는 한국 사회를 망쳐놓았던 이전 세대들을 욕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자신은모랄해저드해서 부인에게 버림받는 시간 강사, 졸부에게 몸을 팔고 그 돈으로 아버지약값과 오빠의 학비를보태고, 자신은 유학갈 꿈을 꾸지만, 약물중독자가 되가는, 자신은 지옥에 태어났다고 믿고 있는 대학생 소령등의 다양한 인간들이 수레바퀴처럼 얽혀서 서로의 일상을 조금씩 공유해가며 살아간다. 

그 인간 군상들은 지극히 정상적이면서 지극히 비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그런 인간들에 대해 정상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일들, 그와 같은 사실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일어나고 있고, 너무나 흔해서 마치 정상적인 일들인 것처럼 보인다. 
내가 순진한 학생 때 나는 이 사회의 부도덕과 불합리한 일들은 우리 이전 세대들의 모습이며 적어도 이제는 그런 불합리한 사실들을 알고 있는, 제대로 교육받은 우리 세대가 이 사회를 이끌 때 즘엔 이 사회는 더 합리적이고, 더 도적적이고, 더 보기 좋은 공평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그야말로 헛된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아니..헛됫 꿈이라고 단정짓진는 말자…그렇지만 어째꺼나 너무나도 이루어지기 힘든 꿈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부도덕한 정치인이 되기위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젊은 정치인들도 널려있고, 졸부의 2세들은 여전히 졸부가 될 것이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소박한 꿈을 꾸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그런 고리는 계속 반복되고, 끊임없는 번식을 통해 다음 세대로 또 이어져 간다. 

영화 <세기말>에 나오는 일상은 전혀 세기말 적이지는 않다. 웃기는 일이지만 너무나 우리 일상에 널려있는일들이다. 그렇지만 인물들의 머릿속은 모두 세기말적이다. 그들에겐 어떤 희망도, 미래도 없다. 
한 친구에게 내가 낙관적인 사람같냐고 비관적인 사람 같냐고 물어봤는데 비관적인 사람같다고 했다. 예전에 또 다른 친구에게서는 내가 참 낙관적으로 산다고 들은 적도 있었는데, 이 친구에게는 내가 비관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나는 생각은 비관적이고, 실제 행동이나 표현은 낙관적이라고 말해주었더니 수긍을 한다. 극과 극이다. ㅡㅡa 

흠..지금도 나에게 희망과 미래가 있느냐 라고 물어보면 나는 머뭇거릴 것이다. 희망? 미래? 글쎄…하지만 나는 이내 “나에겐 희망도, 미래도 있어”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그게 내 신앙인 것이다. 
영화는 왠지 허무한 해피앤드로 끝나버렸는데 솔직히 조금 실망했다. 어쩌면 나는 무언가 더 혼란스러운, 더 무섭고, 내가 두려움을 느낄 만큼 또, 그 이상 치떨리는 그런 세기말의 상황을 보여주길 바랬었나 보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하고,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일들 그런 인간들을 볼 때 그저 짜증이 날뿐이었다. 왜냐면 그건 바로 내 가까이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면 감독이 그린 그런 짜증나는 일상들이야 말로 지금도, 미래에도, 여전히 계속될 세기말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일상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째뜬… 모라토리움,무도덕,모랄해저드,Y2K… 감독이 말하려는 것들이 그런 것들이라면 더 세기말적인 메시지가 있어야 했다. 

우리나라에서 한달에 5000만원씩 버는 사람들이 10만명정도가 있다고 들었다. 과장일지도 모르지만 400명 중 한 명은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잘살고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그들이 사는 세상을 좀더 재미있고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무언가를 발명해내고 밤새워 연구, 개발을 해내고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농사를 짓고, 땅을 파고 건물을 세우고..그렇게 살아가는 우리이다. 

세기말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밥 먹고, 쇼핑하고, 티비보고, 전과 다를 것이 없이 산다. 그게 세기말에 중심에 서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영화 <세기말>은 우리에게 희망은 사람들에게 있다고 말하지만, 덧붙이자면 희망은 꿈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에게 영원히 있을것이다. 
p.s 2008년 8월,  옛날에 블로그에 올렷던것을 아까워서 다시 새 블로그에 올리려고 보니.. 많이 유치하네요 ^^;; 1999년 12월 20세기의 끝..서른이 되기 직전 마지막으로 보게된 영화..아마도 시네21에서 당첨된 시사회를 통해 보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 당시 신문기사는 연봉 5000만원을 논하던 시대였는데….9년간 그때보다 훨씬 양극화되어버린 시대에 여전히 나는 양지로 나가려고 버둥거리며 살고 있네요. 세기말보다 더 세기말 같은 현실 속에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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