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사탕> 나의 박하사탕 이야기


두 주나 전에 본 영화가 아직도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야 유 회 <1999년 봄> 나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 갈래! 자주 그랬다. 늘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과거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고 중얼 거려 왔지만, 나.. 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도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군대를 막 제대한 그 시절로.. 순수하고 우리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고, 첫사랑을 보게된 스무살 그때로 하나님과 좋은 친구들을 만났던 열일곱으로, 좋아하던 선생님과 친구들과 아무 생각없이 즐거울 수 있었던 13살 그때로… 
사 진 기 <사흘전, 1999년 봄> 아저씨 이 사진기 얼마 주실래요? 나에게도 오래된 값없는 사진기 같은 꿈을 갖고 있었다. 어느 순간 누구에겐가 팔아버렸는지, 잃어버렸는지 모르겠지만 그런게 있었던 것 같다. 첫사랑. 맞아 나에게도 첫사랑이 있었다. 그 녀석과 같이 찍었던 사진을 나는 가끔 꺼내어 본다. 그 때는 설레임이 있었다. 얼굴이 붉어지고 말도 더듬고..지금도 그렇지만 이미 난 사람을 능숙하게 대 할 줄 알게 되었다. 지난 봄…내 이기적이고 내 생각 없음으로 인해 당신에게 상처를 주고 내 스스로 상처를 만들어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또 중얼거린다. 후회하지 않아! 난 후회하지 않아!…라고… 
삶은 아름답다 <1994년 여름> 삶은 아름답다… 그렇죠? 그땐 삶은 아름다울 것 같았다. 사단장 앞에서 전역신고를 하고 도열해 있는 신병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버스의자에 몸을 기대던 그때…앞에서 전역증을 나눠주려고 부르는 이름이 아득하게 귓가를 스치며 들리는 동안 2년 반의 시간들이 눈앞으로 지나갔다. 오월의 햇살이 푸른 나무들을 눈부시게 만들던 그해 오월. 나는 삶은 아름답다라는 말을 믿고 있었다.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더운 여름이었다. 
고 백 <1987년 4월> 아직도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니? 그 때 생각하면 집에서 꽤 멀리 떨어진 낯선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학교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누군가 미래에 대해서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그냥 진학하나보다 하면서 그다지 어렵잖게 고입시험을 보고 학교에 갔다. 중학교때와는 많이 달랐다. 거의 모두 남자선생님이었고 왠지 모를 강압적인 분위기, 교회친구들과는 다른 학교친구들… 미아리텍사스촌이 무엇인지도 처음 알았고, 학교 아랫동네 세탁소에 걸려있는 개량한복들을 보면서 우리나라문화를 아낄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구나 하는 바보에 가까운 순진함이 있었다. 고등학교시절은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의 대부분의 생각을 갖게된 때였다. 아픔이 많았던, 그러나 사춘기의 티조차도 별로 내보지 못했던 때였지만, 삶은 과연 아름답다라고 생각했다. 내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것이라고 믿었었다. 
기 도 <1984년 가을> 그래요 내 손은 착한 손이에요… 나는 비교적 착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으면서 자랐다. “난 착한애야!”라는 강박관념은 늘 내머릿속에서 웅웅 거렸고 나는 그 말대로 그다지 나쁘다고 여겨지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가끔 때도 쓰고 동생과 싸우고,무언가를 망가트려 혼이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역시 수줍음 많은 착한 아이였다. 후에 나는 그런 내 이미지가 너무나도 싫었던 적이 있고 지금도 가끔 나를 착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기도 하지만, 난 이제 그때처럼 착하진 않다. “난 착한 애야”라는 생각은 나에게 늘 죄책감에 쉽게 빠지게 만들었고, 나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쁜애가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착한 행동에 너무나 익숙해 버려서 나의 나쁜 행동은 내게 너무 어색했고 그래서 나는 괴리감에 빠지곤 했다. 
면 회 <1980년 5월> 군화에 물이 차서 질퍽거려 뛸 수가 없어요.. 초등학교 2학년때는 유난히 결석을 많이 했던 해였다. 어느날 밤 뛰어가다 심하게 넘어졌는데 그때 돌에 부딪친 어깨가 유난히 아파왔다. 집에와서 양치질을 하면서 울면서 말했다. 어깨가 아파서 양지칠을 못하겠다고..결국 다음날 병원에 갔는데 의사는 어깨에 금이 갔다고 했다. 그리고 붕대를 많이 감아 주었다. 또 하루는 새벽에 머리가 너무 아팠다. 너무 아파서 깨서 뒹굴었다. 겨우 아침에 되어서 거울을 보았는데 얼굴이 퉁퉁부어 있었다. 볼거리였다. 그 때문에 나는 며칠학교에 가지 않았는데 아직 학교에 가지 않았던 동생과 집에서 스카이 콩콩을 타면서 놀았다. 콩콩거릴때마다 볼이 아팠지만 그래도 학교에 가지 않고 놀아서 좋았다. 어머니는 싫어했지만… ^^; 
소 풍 <1979년 가을> 박하사탕 좋아하세요? 난 어릴때부터 사탕을 좋아했다. 사탕뿐만 아니라 엿,말랑제리,밀크캬라멜,초콜릿과 아이스크림도 무지 좋아했다. 그러한 결과로 어릴적부터 나는 치과에 자주 들락거리기 시작했고 고등학교때는 무려 14개의 썩은이를 보며 놀라는 치과의사를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양치질을 열심히 하는 편이지만 아직도 그런 것들을 즐겨먹는다. 방과후 나는 친구와 같이 걸어가다 학교 게시판에 붙어있는 대통령 사진을 보았다. 친구가 “대통령각하가 죽었대”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때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그때 난 대통령각하라는 사람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나에겐 딱지와 구슬이 필요했고 아이젠버그와 마징가Z가 죽는게 더 가슴아프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랬을 것 같다. 주인공인 김영호 보다 나는 10살 이상 어리다. 나보다 10살 이상 많은 사람들은 이 땅에서 삶을 배워나가기가 나보다도 훨씬 더 두려웠을 것 같다. 그들은 혼란한 시절에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고, 성장해서는 경제발전을 위해 희생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이전 세대들에게 뒤쳐지고 있으며, 새로운 세대들에게 따돌림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린 모두 우리의 과거를 잊으려 하고 있다. 순수하고 싶고 그렇게 살수 있을것만 같았던 그때를 잊고 살아가는 것이다. 김영호도 원조교제를 해대는 아저씨들도 사실은 순수하게 살고 싶어던 때가 있었던 것이다. 박하사탕 하나에 가슴 저리던 순수하던 때가 말이다. 후후…두 주나 전에 본 이 영화. 아직 내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 나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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