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


추억한다는 말… 
기쁜 일이건 슬픈 일이건 무언가를 추억 한다는건 야릇한 즐거움을 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난 가끔 우울할 때면 앨범을 꺼내들고 옛날 사진들을 들춰보며 학창시절과 여행에서 느꼈던 즐거움등을 추억한다. 또 가끔씩 “연중행사로 내방 대 정리”등을 하면서 옛날 일기들과 편지들을 꺼내보며 키득거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퇴행적이 되어버리기 직전에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추억에는 그런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추억 한다는 말을 좋아한다. 

그러나 때때로 상당히 기분이 우울해지는 추억들도 있다. 아주 불쾌한 일이 있었던 장소나 잊고 있었는데 떠오르게 만드는 그 어떤 것들이 나를 다시 그때를 추억하게 하면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이미 시공간 속으로 저 멀리 사라져버린 그러한 일들에 대한 추억이 아직도 나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아주 조금은 미치기 직전인 형사들을 이해가 된다고…조심스럽게 말해 본다.(사실 어찌 그 마음일 이해 하겠냐마는…ㅡㅡa) 술렁술렁 하는거 같지만 나름대로의 범인검거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박두만 형사, 날카롭게 증거와 탐문수사를 하던 서류 숭배자 서태윤, 날으는 워커발 조용구 형사… 그러나 살인범의 검거는 이제 그들에게 더 이상 ‘일’ 이 아니다. 아니 ‘일’ 이 될 수 없다. 직업으로서의 ‘일’ 은 적어도 무지하게 노력하면 어느 정도 해결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제 연쇄살인범을 잡는 일은 그들의 능력 밖의 일이 되어버린다. 그들의 뭉개진 자존감과 피해자가 늘어남에 따라 더욱 거세지는 분노로 인해 그들은 이 끝나지 않을 일을 위해 서서히 미쳐가는 것이다. 박두만의 혈기는 계속 되는 오판으로 소심해지고, 서태윤의 서류 또한 힘을 잃고 광기로 변해가고, 워커발을 자랑하던 조용기는 결국 다리를 잘리게 된다. 그러나 살인은 멈추지 않고 범인의 자취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다. 
영화 속에서 어이없게도 박두만 형사(?)는 점집을 찾아가서 경찰서 정문을 옮기라는 소리도 듣고, 먹물을 부어 범인 얼굴을 찾는 무모한 짓을 하기도 하며, 무모증환자가 범인이라고 확신하며 온종일 목욕탕을 헤매고 다닌다. 실소하게끔 만드는 이러한 장면들은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 당시 범인 검거에 대한 스트레스로 한 형사는 중풍에 걸렸다고도 하고, 또 실제의 경찰서 정문이 몇 십 미터쯤 옆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참 어이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잡힐만한 희망도 보이지 않고 그 어떤 증거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픈 그들이었으리라.. 
연쇄살인사건…나 또한 기억한다. 중,고교시절 신문 탐독을 유독 즐겼던 나로 하여금 그냥 지나쳐 가지 않고 보게되었던, 사회면의 한 귀퉁이를 장식했던 꽤 유명한 사건이었던 것을.. 하지만 그런 이슈에도 불구하고 그저 먼 곳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사건은 너무 영화 같은 이야기라 현실감이 없었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86년에 첫 희생자가 나왔다고 한다. 86년이면 내가 중학교 3학년 때이다. 정치에 대해 무관심이라기 보다 무지 했던 중학교 3학년의 눈에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흐름과 주먹(?)의 계보 같은 것들 그리고 그 당시 남자애들의 일상적 관심사(성적 환상, 날라리들의 영웅담등 ^^;)들에 더 관심이 있었던 때였다. 나이키니 아디다스니 하는 브랜드와 새로나온 티브이 프로와 오락실의 액션게임에 열중하던 그때 나에게 신문의 마지막 페이지에 있던 TV프로편성표 보다도 연쇄살인사건은 더 재미없는 일일 뿐이었다. 
아마도 그 당시 사회도 그랬었나보다 연쇄살인사건 보다 더 많이 신경써야 할 수 많은 다른 일들로 인해 추억이 될 수 없는 악몽같은 이 슬픈 이야기가 ‘추억’으로 남을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영화 카피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는 범인에게 묻는 질문이 아니라 그러한 시대와 그들에게 무관심했던 모든 이들에게 하는 질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그때 어디 있었던가…그리고 지금은? 
어째꺼나 이 영화 기대이상으로 너무나 잘 만들어졌다. 보는 내내 가슴이 떨렸다. 살인자의 무서움 때문도, 감동적이어서도 아니었다. 정말 그야 말로 너무나 잘 만든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가슴 떨리게 했다…정말 멋지다 봉준호 감독..다음 작품을 다시 한번 기대해본다 
p.s 봉감독님…2006년에 괴물로 다시 한번 그 존재감을 지대 알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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