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랑전설



에니메이션 ‘인랑’을 좀 더 잘 이해하려면 한번 볼만하다.  에니와는 내용이 많이 다르다. 어째꺼나 에니메이션 감독 이전에 스크립터로서의 오시이 마모루가 참 맘에 든다. 총 2권이고 옛날에는 3500원이었는데 요즘은 모르겠다…아래는 등장인물 중의 하나인 미도리(멋진 넘으로 기억하고 있다 ^^;)의 독백이다.
“평소에 있어서의 경찰관의 무력행사는 설령 인명을 살상하게 된다해도 그것은 정당방위이며 ‘제지’라는 행위의 결과로 치부된다. 그것이 법의 정의 아래서 집행되는 한, 각각의 경찰관이  윤리적으로 재판받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한편 국가 명령 하에 적과 싸우는 병사는 평소와는 다른 도덕률에 놓이게 되며 그 힘의 행사에 의한 실상,파괴등의 행위는 그자체가 오히려 선으로서 칭송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평호와 다른 도덕률에 놓이게 된자는 그 힘의 행사를 행할때 신중을 기해야만 한다. 그러나 경찰관 이면서 끊임없이 어지러운 현장에 출동해 군대 병사처럼 행동하는 특기대. 평시에도 유사시 처럼 살아가는 너희들은 잘 알 것이다.
평시의 경찰, 유사시의 군인….실은 그말 자체가 평상시에도 흔히 쓰이는 말이며, 본질적으로 우수한 병사를요구하는 시점에서는 평상시를 항상 유사시로 보아야 한다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정부는 아직까지 ‘유사시’의 구체성을 제시하지 않고 있고 우리들에게 단지 병사로서의 숙련도만을 요구해 오고있다.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만 하는가?
그저 위정자의 편의를 위해서 편성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기는커녕 오로지 힘만을 비축해 온 악마의 자식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화된 폭력은 결코 자신의 의사를 가져서는 안된다.
이 조그만 나라의 역사는 그렇게 가르치고 있으며, 적어도 전후에 태어난 우리들은 그렇게 배워왔다. 그 자체에 의문을 품을수는 있어도 최후의 우리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체내에 흐르는 ‘피’일 게 틀립없다.
(어떤 종류의 짐승들 처럼)우리들은 생각해서 판단하는게 아니라 교육받아 몸에 익혀진대로 판단하며, 그 과정을 부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들의 의사를 대변해 줄것인가?
국가,국민,이데올로기…
그러나’정의’라는것이 항상 특정인의 정의이고, 그 집행이 항상 피를 동반하는 것이라면 우리들이 바라는 ‘주인’도 그런 추상적인 것일리가 없다.
추구해서 얻을수 있는 거라면 추구해도 좋지만 만나는 것 말고는 얻는것이 없다.
만난 그 순간,’피’가 그것이라고 일깨워주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 추구하는 것이라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또 그렇게 교육받아 왔으니까.. “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관계에 대한 사색

Arthur Ashe

지각인생 손석희